성경을 자신의 입맛대로 사용해서 세습을 옹오하는 이들에게

이스라엘 초기 시대의 세습

한글자전에 “세습世襲”이란 단어는 “재산, 신분, 직업 등을 한 집안에서 자손 대대로 물려받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성경에 세습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성서의 직분은 삼중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삼중직三重職과 마찬가지로 “왕직王職”, “제사장직祭司長職”, 그리고 “예언자직豫言者職”의 세 가지가 성경에 나온다. 오경에서는 삼중직이 모세에게로 수렴되어 있다. 모세는 삼중직 중 제사장직을 아론과 그 아들들, 그리고 레위인들에게로 이양한다.

모세는 두 아들을 두었다. 모세는 자신의 직분을 아들이 아니라 여호수아에게로 이양하였다(민27:18; 신31:1-8). 여호수아는 모세의 제자였다(출33:11). 이와는 달리 아론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제사장직을 승계해 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첫째와 둘째인 나답과 아비후가 제단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급살을 맞아 죽었다(레위기 10장). 이로써 아론의 제사장직은 셋째 아들 엘리에셀이 승계하였다. 성경은 모세의 직분이양과 아론의 세습 사이를 매우 뚜렷한 대조법으로 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설혹 세습이 야훼 하나님의 지시로 행해진다 하더라도 세습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아론의 아들 중 막내 아들 이다말에 대한 언급이 전무한 가운데 셋째 아들 엘르아살 제사장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분배의 작업에 동참한다(수19:51).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세습 이야기는 엘르아살-비느하스 이야기이다. 아버지 엘르아살의 제사장직을 승계한 비느하스는 가나안 땅에서 활약한 것으로 보도된다(수22:30). 하지만 그 후로 비느하스의 역할은 일체 보도되지 않는다.

사사기 20:27-28에 비느하스가 벧엘의 제사장으로 언급되는데(삿20:27-28) 이 구절은 아마도 원문이 아니라 아마도 후대의 첨가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열두 사사를 거친 후에까지도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복무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연대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이처럼 아론 가문의 제사장직은 세습되었지만 사사시대 이후로는 잊혀졌다. 그러다가 왕국시대에 이르러 다윗은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비느하스란 이름은 사무엘서에서 다시 등장한다. 제사장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 두 아들을 두었다. 물론 이 비느하스는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아니라 동명이인이다. 하지만 성서의 수사법은 많은 경우에 동명이인을 통해 대조법을 연출한다(창세기 4장과 5장). 민수기 25장의 비느하스는 우상숭배를 척결한 충성스런 제사장이었지만, 이와는 반대로 사무엘상서 1~4장의 비느하스는 형 홉니와 더불어 타락한 제사장의 전형이다. 이는 명백한 비느하스 대조법이다.

엘리는 실로의 제사장직을 자신의 두 아들에게 승계하여 주었다. 엘리의 두 아들은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한 날 한 시에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언약궤가 함께 있었으나 전투에서 패하여 전사하고 언약궤마저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너무나 놀라서 뒤로 자빠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나중에 비느하스의 손자 아히야는 기브아 산당에서 제사장으로 복무하는 것으로 보도된다(삼14:3).

이처럼 불행한 제사장 엘리의 세습 이야기를 뚫고 사무엘이 실로의 제사장직을 승계한다. 사무엘은 모세와 마찬가지로 왕직을 지닌 사사인 동시에 말씀을 맡은 예언자였으며 또한 엘리의 제사장직을 승계한 제사장이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실로의 신전에서 기숙하면서 공부했지만 엘리의 제사장직 세습에 밀려서 제사장직을 물려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무엘이 삼중직으로 봉직하게 된 것은 순전히 야훼 하나님의 부르심 덕분이었다(삼상3:19-21). 엘리는 자식을 편애한 죄로 인하여 범죄하였다. 엘리가 감행한 성직의 세습은 멸문지화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왕위 세습에 관한 구약의 증언

왕직의 세습은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가? 사울의 왕직은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로 세습되지 못했다. 사울은 사무엘의 제사장직을 월권하는 죄를 범함으로써 사무엘은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차기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다. 사울 왕과 요나단 왕자는 한 날 한 시에 전사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왕위 세습은 끔찍한 비극의 연속이었다. 왕자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서로 죽이고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 다윗의 왕직은 솔로몬이 세습하였으나 솔로몬은 이복형 아도니야를 죽이고 선대의 신하들을 살해하는 참상을 벌인다(왕상2:25).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직의 세습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솔로몬을 세습한 르호보암은 실책을 저질러 이스라엘 열한 지파가 떨어져 나가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분열하는 비운을 맞았다. 북왕국 여로보암은 아들에게 세습했으나 이내 반정이 일어나서 왕조가 바뀌고 말았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직은 바아사 반정, 시므리 반정, 오므리 반정, 예후 반정, 살룸 반정, 므나헴 반정, 등 거듭되는 반정들로 인하여 세습이 몇 대를 가지 못하고 좌절하는 불행한 양상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남왕국의 다윗 혈통 세습은 안정적인 기조를 보이지만 이 역시 북왕국 출신의 아달랴 여왕이 반정을 일으켜 요아스를 제외한 다윗 혈통의 왕손들이 모두 전멸을 당하는 참상을 당한다(왕하11:1-2). 이와 같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인간의 육정에 따른 권력의 세습에는 부단한 불행이 뒤따라 온다는 것을 성경은 매우 무서운 어조로 경고하고 있다.

제사장직의 세습은 공적 임무를 위한 것

그러나 제사장직의 세습은 레위인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모세 시대로부터 제사장직을 맡은 지파는 레위 지파였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성전에서 섬기는 일은 레위 지파에게 맡겼다. 레위인들은 땅과 재산을 사유할 수 없었다. 레위인은 공인으로 부름을 받았기에 그들에게 십일조를 위시한 모든 성전 제물이 주어졌다(민18장). 레위인의 수입은 일반인의 수입 보다 세 배 정도 많아야 한다는 기준을 민수기는 제시하고 있다.

인구조사 결과 일반지파의 인구는 60만 명 남짓 되었고, 레위 지파의 인구는 2만 명 가량 되었다. 인구대비 30:1이었으니 십일조를 상정할 때 레위인의 수입은 일반인의 수입 보다 3배 정도 많아야 한다. 그 외에 제물로 바친 것을 모두 레위인이 관리해야 했기에 레위인의 수입은 아마도 5배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레위인이 거둔 수입은 모두 공인으로서의 레위인에게 주어진 공적 기금이었다. 이 공적 기금은 공동체 내에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레위인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했다. 포로 후기에 레위인은 디아스포라 말씀공동체를 말씀으로 잘 다스리는 임무를 맡았으며 공적 재정을 잘 운영하는 역할도 맡았다. 레위인의 세습은 이와 같이 무소유자로서 공적 자금을 운영하는 공적 직무의 세습이었다. 레위인 세습의 본질에는 성막의 지성소에 안치된 언약궤를 중심으로 말씀을 잘 섬기는 말씀직분의 세습이 들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예언자직은 세습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예언자직의 세습이야기를 살펴보자. 말씀을 받고 맡아서 선포하는 직분이 예언자직이다. 예언자 중에 신명기사가가 매우 집중하여 논하고 있는 예언자는 엘리야와 엘리사라 할 수 있다. 엘리야는 자신의 예언자직을 엘리사에게 승계하였는데 엘리사는 엘리야의 아들이 아니었다.

구약성서의 대표적인 예언자들인 엘리야와 엘리사. 이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중요한 직분이었음에도 세습은 전혀 없었다.

특히 부정적인 논조는 사무엘의 세습에 나타난다. 사무엘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자신의 사사 직분을 세습해 주었는데 이 두 아들이 타락하여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되었다(삼상8:1-3). 사무엘의 세습 때문에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백성들이 야훼의 왕권 대신에 세속의 왕국 체제를 도입할 것을 강청하는 너무나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이나 열두 소예언자들이 자신의 예언자직을 세습했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전혀 없다. 호세아가 자신의 두 아들을 이스라엘에게 내린 불행한 심판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는 호세아서를 읽는 독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슬픈 이야기이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뿐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세습이야기들에는 일정한 신학이 베어 나온다. 말씀을 준행하는 섬기는 직분 외에 인간의 필요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세습은 모두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습은 인간의 세습과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창조주의 직분을 세습해 주셨는데 자신을 비우고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만물을 섬기는 직분을 세습하셨다. 참으로 겸허한 하나님-아들-성령, 삼위일체의 세습은 고난을 뚫고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진다.

출처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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