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안에 사역자들의 인격 파괴 현상은 잘못된것입니다.
인터*과 본부장의 특징,
목적을 위해 최바* 가족을 제외한 모두는 사실 도구화시킬뿐이다.
인터*은 구성원 특징과 성향을 억누르고 그 관심을 철저히 인터* 공동체의 목표에 집중시켜야 하므로, 끊임없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며, 이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구성원은 배척, 배제된다.
또한 내부 인터*은 공동체'에서 타 공동체로의 떠나거나 다른 기독교 공동체로부터의 인터*과 다른 성경적 가르침의 유입이 일어날 경우 분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타 공동체에 대해 굉장히 배타적인 성격을 띤다.
이 결과, 인터* 이념의 재확인 및 타 공동체에 대한 배타적 태도의 결과물로 다른 선교 기독 공동체에 대한 비판과 우월의식이 일어나게 된다.
지속적으로 인터*의 활동은 모두 공동체의 통합성과 우월감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므로, 자신의 이념과 우월성을 계속해서 선전하고 선동하고 다니는 특성도 보인다.
이렇게 하나의 공동체를 하나의 통일적 이념으로 휘어잡고 개인의 특징을 억누르고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매진해야 하므로, 인터* 통합과 어긋나는 '개성'이나 '창의성'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인터*의 가장 큰 장점은 힘의 결집이다. 인터*은 지도자의 판단대로 다수를 하나로 묶어 이들의 힘을 쉽게 모을 수 있고, 목표에 방해되는 개인의 불필요한 행동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지도자가 올바른 방향성을 잡는다면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건 물론, 장기적으로도 몇십 년이고 안정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다.
공동체 내부의 단결력과 정신적 통일성, 외부 집단의 배척 면에서 인터*이 큰 힘을 발휘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은 공동체의 비전을 위해 개인의 인간성과 사생활을 비롯한 모든것에 희생과 순종(복종)만을 강조하고, 극도로 수직적이다. 결국 인터* 장기적 역량을 축적할 수 없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인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본부장에 대한 맹목적 추앙으로 연결된다. 인터*에서는 힘의 결집을 위해 개인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고, 오직 공동체에게만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그 인터*자체는 자아와 판단능력을 가진 지성체가 아닌, 단지 특정 행동과 심리를 가진 개인들의 집합이거나, 개인 총합 이상의 힘을 지녔긴 해도 그저 안정적인 구조를 이룬 규범과 조직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인터* 하에서의 구성원은 명목상으로는 인터* 그 자체에 헌신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인터*을 사실상 지배하는 본부장과 그의 힘이 세습된 그의 가족에 충성하게 된다.
따라서 인터*의 아래의 모든 구성원은 이러한 현실에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되어,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각종 논리 및 권위를 보충하기 시작한다. 억압적인 분위기는 실질적으로는 인터*의 기득권층을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로, 기득권층의 사리사욕에 대한 탐닉은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전체의 뜻으로 포장된다.
결국 인터*은 구성원을 성경말씀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그저 본부장과 지금은 그의 가족의 뜻을 따르기만 할 뿐 생각은 하지 않는 '도구'로 만들어버린다.
이렇듯 모든 구성원은 의심 없이 인터*자체를 따라야 하기에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처단해야 할 적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터*에서는 구성원을 통제하고 반동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내부 총질과 지속적인 인터*의 사상과 다른 이들을 찍어 제거하는 공포를 조장한다. 본부장은 구성원을 통제과 감시의 존재로 생각하는 건 물론 구성원들끼리도 서로를 감시토록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력해진 간사와 선교사 및 구성원은 본부장과 세습으로 이어진 그의 가족의 명령만을 따르는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인터*은 개인보다 인터* 공동체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구성원들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정체성 상실을 느끼고 문제를 즉시할때 즈음이면 인터*에선 공동체 기조에서 이탈했다고 총질하며 제거한다. 계속 새로운 본부장의 가족의 사익을 뒷밭침할 새로운 인원을 포충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청년들이 해당된다. 물론 그들도 일정 기간이 지나 효용성이 떨어지면 폐기처분이 된다.
또한 인터*에서의 내부 다양한 리더십 구조는 인터*의 사상 혹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 여러 관직을 차지하고 조직간 하는 업무가 자주 겹쳐, 실제로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알 수 없게 되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본부장은 인터*내 다른 사역자들의 리더십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리더십간 경쟁을 유도하며, 효용성등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중간급 리더들은 숙청해버린다.
인터*에 오랜기간 사역한 사역자일수록 인격성이 파괴되고 획일화된 기준과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실행을 강요당하는 기계화가 가속된다. 개인의 도덕적 기준은 의미가 없고 인터*이 원하는 가치를 무조건 실행하는 이들이 인정 받고 좋은 모델로 사용한다.
(인터*의 내부자들 예를 들어 대표간사, 오랜기간 활동한 총무단, 선교사그룹에선 위 글을 읽으면 아주 놀랄것이다. 너무 잘 분석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글은 인터넷에 '전체주의'를 검색하면 나무위키에 나오는 글에서 전체주의라는 단어대신 인터*으로 바꾼 글임을 밝힌다.아래는 나무위키 전체주의관련 설명글
전체주의 공동체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자 성향인 개인의 자유 자체를 억누르고 그 관심을 철저히 공동체에 집중시켜야 하므로, 끊임없이 전체주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며, 이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개인은 배척, 배제된다. 또한 국민들이 구성한 '하나의 공동체'에서 타 공동체로의 유출 혹은 타 공동체로부터의 유입이 일어날 경우 분열의 소지가 존재하므로, 타 공동체에 대해 굉장히 배타적인 성격을 띤다. 이 결과, 전체주의 이념의 재확인 및 타 공동체에 대한 배타적 태도의 결과물로 외부 공동체에 대한 침략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히틀러가 전 세계와 싸우고 자국 내 소수민족, 유전병 환자나 장애인들을 처결하고 다닌 것이나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계속 도발과 전쟁 위협을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 이러한 사업은 모두 공동체의 통합성과 우월감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므로, 자신의 이념과 우월성을 계속해서 선전하고 선동하고 다니는 특성도 보인다.
이렇게 하나의 공동체를 하나의 통일적 이념으로 휘어잡고 인간의 본능적 자유를 억누르고 자기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매진해야 하므로,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을 넘어 국가 사업을 주관하는 기관도 통일적 이념을 보유한 과두 집단으로 제한된다. 관료제(혹은 더 나아가 국가 그 자체)는 철저히 전체주의 운동의 실현을 위한 도구로만 운영되며, 사회 안에서 국가 통합과 어긋나는 '개성'이나 '창의성'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전체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힘의 결집이다. 전체주의는 지도자의 판단대로 다수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이들의 힘을 쉽게 모을 수 있고, 목표에 방해되는 개인의 불필요한 행동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지도자가 올바른 방향성을 잡는다면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건 물론, 장기적인 국가계획을 몇십 년이고 안정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다. 예를 들어 소련은 국민들의 피와 인권을 먹고 자란 전체주의를 발판 삼아, 서구에 비하면 늦었지만 기적적인 속도로 산업화를 이룩했다. 현재 민주 국가인 한국, 대만, 일본도 각각 군사독재, 장제스의 대만 계엄령, 메이지 유신 등을 거쳐 빠른 근대화에 성공했다.
공동체 내부의 단결력과 정신적 통일성, 외부 집단의 배척 면에서 전체주의가 큰 힘을 발휘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인간성과 사생활을 비롯한 사회 전체를 희생시키는, 극도로 수직적이고 소모적인 사상이다. 따라서 전체주의 국가는 장기적 역량을 축적할 수 없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전체주의가 이어지고 있는 국가는 기껏해야 북한 정도가 끝이다.
전체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추앙으로 연결되기 매우 쉽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에서는 힘의 결집을 위해 개인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고, 오직 공동체에게만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그 공동체(국가)는 하이브 마인드 같은 자아와 판단능력을 가진 지성체가 아닌, 단지 특정 행동과 심리를 가진 개인들의 집합이거나(사회계약론), 개인 총합 이상의 힘을 지녔긴 해도 그저 안정적인 구조를 이룬 규범과 조직(사회실재론)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전체주의 하에서의 개인은 명목상으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 그 자체에 헌신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해당 공동체를 지배하는 권력층과 최고지도자에게 충성하게 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아래의 모든 개인은 이러한 현실에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되어,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각종 논리 및 권위를 보충하기 시작한다. 억압적인 분위기와 체제는 공동체(실질적으로는 기득권층)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로, 기득권층의 사리사욕에 대한 탐닉은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전체의 뜻으로 포장된다. 그 결과 해당 국가에 소속된 모든 구성원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할 공동체의 화신, 즉 '절대적 개인'이 탄생한다. 결국 전체주의는 국민들을 양심을 가진 존엄한 '인간'이 아닌, 그저 지배층의 뜻을 따르기만 할 뿐 생각은 하지 않는 '도구'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체제는 전제군주제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으며, 당연히 전제군주제에서 보인 왕권(최고지도자)과 신권(관료조직)간의 대립 등의 문제가 전체주의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이렇듯 모든 국민들이 의심 없이 국가를 따라야 하는 전체주의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처단해야 할 적에 불과하다. 따라서 많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을 통제하고 반동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경찰을 만들었다. 정치경찰은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건 물론 국민들끼리도 서로를 감시토록 해 이웃, 가족까지 믿지 못하게 만들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력해진 개인은 국가의 명령만을 따르는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전체주의는 개인보다 사회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구성원들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에서 오는 고독을 느끼게 된다.
또한 전체주의에서의 관료제는 조직이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 여러 관직을 차지하고 조직간 하는 업무가 자주 겹쳐, 실제로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알 수 없게 되기 일쑤다. 나치 친위대가 이것저것 다 하고 옛 소련이나 현재 북한을 보면 어떤 기구가 무슨 일을 하고 또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전체주의의 이런 특성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는 조직이 지나치게 커지고 경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간 경쟁을 유도하며, 심하게는 관료들을 숙청해버린다. 실제로 히틀러는 나치 내 특정 조직이 너무 성장하면 그걸 견제하기 위한 다른 조직을 만들어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조직을 관리했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대대적인 숙청을 벌여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관료들을 주기적으로 제거했다.
이렇게 체제 유지만을 위해 정부 조직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니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따라서 전체주의에서는 지도자의 즉흥적인 결정이나 내부 유력자들간의 유착 등으로 국정수행에서 큰 비효율이 발생하기 쉽다. 예를 들어 나치당은 독일 재계인사와 유착해 전시 도중에도 여러 부정부패를 자행해 자국의 전쟁수행능력을 심각하게 깎아먹었으며, 1944년 말에 들어 전황이 막장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등장한 국민돌격대 또한 재계인사의 부패와 밥그릇 싸움으로 무장 혼선이 심각했다. 한편 스페인 내전 이후 스페인 전국이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를 차지하며 전쟁의 참화를 회복하지 못했던 시절, 프랑코가 계급 투쟁의 승리를 과시하며 조장했던 구 귀족층의 초호화 결혼, 사치 같은 행각은 스페인 사회에 깊은 분열과 불신의 씨앗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전체주의 국가는 체제 유지를 위해 모든 다양성과 창의성을 말살했기에 싱크 탱크 같은 연구기관의 활동 또한 억제되어, 이들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과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충원하지 못하며, 창의성이 중요한 문화 및 과학기술 발전에도 자본의 흐름이 자유롭고 다양한 사상이 존중받는 자유주의 국가보다 약세를 보인다. 이는 경제 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체주의 국가는 대개 제대로 된 경제성장을 하지 못한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제사해 운동 등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전체주의의 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