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이 사유화와 세습으로 갈수 밖에 없는 이유와 대안
-사유화와 세습은 절도행위에 다름없다. 그것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 것에 대하여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본부장이라는 기능은 인터*의 구성원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문가적 입장에서 가르치는 소임을 맡았을 뿐이다. 즉, 본부장은 인터*의 주인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 딸과 가족에게 인터*의 운영권을 배타적으로 승계시키는 것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 것을 대상으로 하므로 명백히 절도행위에 해당한다. 자기의 집이 아닌 남의 집을 가리켜 아버지가 아들 딸에게 “너 저집에 살아볼래”라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며, 양식있는 아들, 딸이라면 그러한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사유화는 인터*의 병폐를 잘 드러내는 전형이다. 지금 인터*은 본부장과 나머지 모든 구성원 사이에 권위적 지배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권위적 지배구조를 통하여 최바*의 잘못된 의사가 모든 구성원에게 전달되고 모든 구성원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인터*이 타락해가고 있다.
사유화와 세습은 이러한 증후의 대표적 전형이다. 즉, 본부장의 그릇된 욕심이 권위적 지배구조를 통하여 정당한 비판없이 구성원의 굴종을 도출하여 수용·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의 가족중심의 사유화와 세습에 대한 반대는 표면적 인터*문제의 해결을 위하여만 아니라 인터*의 병리현상 전체에 대한 치유를 위하여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사유화와 세습이 수용되는 원인
어떻게 선교단체에서 절도행위, 차별행위, 사리사욕행위의 성격을 갖는 부당한 사유화와 세습이 추진되고 또 용인될 수 있는가? 그 원인의 핵심은 인터*내부에 형성되어 있는 권위주의적 또는 억압적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본부장은 인터*구성원 위에 일방적으로 군림하고, 인터* 구성원은 마치 전제군주의 신하와 같이 저항없이 묵종함에 따라 인터*내부에서 권위적 지배구조가 형성되며 이에 따라 세습과 같은 부당행위가 유효한 저항없이 저질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터*에서 권위주의적 지배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가?
1) 본부장의 지배권력
인터*내의 권위적 지배구조는 일차적으로 본부장이 구성원에 대하여 갖는 다양한 권력에서 비롯된다. 본부장이 인터*구성원에 대하여 행사하는 권력은 세가지 형태를 망라한다.
첫째, 가시적 권력이다. 명백히 관찰될 수 있는 권력으로서 인터*의 모든 결정과 권한은 최바* 일인에게 과도히 집권화되어 있다. 최바* 주변에 있는 사역자들의 경우 조력자의 수준을 넘지 못하며 간사들은 아예 반대를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바*은 가시적 권력을 발동하여 사유화와 세습을 추진하고 반대의사를 압박할 수 있다.
둘째, 비가시적 권력이다. 비가시적 권력이란 특정 주제가 공식적인 의사과정에 상정조차 되지 않도록 작용하는 권력을 말한다. 지금까지 인터*에서 서서히 진행된 문제에서도 이러한 권력이 관찰된다. 즉, 일부 선교사와 총무들의 세습과 사유화에 반대의사가 공식적 의결과정에 상정되지 못하는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바*이 반대의사에 대한 언급을 사전에 제압하기 때문에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최바*이 명시적인 압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즉, 누군가 인터*의 폐쇄적 운영과 사유화, 세습이 부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해보았자 현 구도하에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거나, 문제를 제기했을 때 돌아올 부정적 반응이나 불이익을 미리 예견하여 스스로 문제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에도 이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여하튼 지배권력을 가진 본부장에게 불리한 의제는 공식적 또는 가시적인 의사절차에 상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비가시적 권력을 통하여 인터*의 사유화와 세습기도는 유효한 저항없이 추진되게 된다.
셋째, 잠재적 권력이다. 이는 인터*구성원의 의식구조에 미치는 지배권력으로서 지속적이며 효과적인 세뇌를 통하여 구성원들로 하여금 정당한 판단을 할 능력을 잃도록 작용하는 권력을 말한다. 실제로 최바*은 끊임없이 순종과 복종, 인터*내의 질서와 위계구조의 인정, 비판적 태도에 대한 비난, 외부 공격에 대해서 내부적 결속 등을 인터* 구성원에게 세뇌시킨다. 그 결과, 인터*구성원들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에 대하여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당성을 판단하기보다는 최바*의 결정에 맹종하거나 충성경쟁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잠재적 권력은 그 효과에 있어서 비가시적 권력에 비하여 우월하다. 비가시적 권력은 때로는 불만이 공식적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만 한다. 또는 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출해봐야 소용이 없거나 반대의견을 제출한 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잠재적 권력의 경우에는 그러한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다.
이미 인터*구성원은 세뇌를 통하여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거나 무비판적인 지지를 보내도록 길들여 있다. 그리고 이같은 잠재적 권력을 통하여 폐쇄적이며 교묘하게 진행되는 인터*의 사유화와 세습기도는 저항없이 지지되는 것이다. 잠재적 권력은 이렇게 강력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권력이다.
2) 인터*구성원의 대응
이와 같은 최바*의 권력행사에 대하여 인터*구성원이 취할 수 있는 행동유형은 비판, 이탈, 무시, 충성, 타협 등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비판 또는 의견표출이다. 의식 있는 일부 구성원은 잘못된 결정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예컨대, 폐쇄적 운영구조, 사유화, 세습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의무를 행사하는 것이며 동역자로서의 공적의무를 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둘째, 이탈이다. 일부는 불만이 있는 경우, 의견을 표출하기보다는 선교단체를 옮기거나 사임한다. 이러한 행동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불편함을 벗어나 당장에는 다소의 평안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탈은 이탈과정에 따르는 정신적 부담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하여 해소하고자 하는 사익지향적 방법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셋째, 무시 또는 무관심이다. 일부는 문제를 평가하지 않거나, 평가하더라도 무시하고 가볍게 지낸다. 즉, 관객으로 남는 것이다. 대다수의 구성원의 모습이다. 문제는 무관심 속에서 부패가 싹트고, 병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이기적인 사적 행동으로서 한계가 있다.
넷째, 충성이다. 최바*의 결정이 정당한 것이든 부당한 것이든 지지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대개의 경우, 무지에서 비롯된다. 공동체 리더에 대항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은 무지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다른 이유에서 충성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사유화와 세습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더라도 리더를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거나, 자신의 지위유지를 위하여 충성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바*의 전횡에 구속되어 있는 사역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믿음과 상관없이 최바*의 부당한 행동에도 충성을 표시하도록 강요받으며 스스로 충성경쟁을 한다.
마지막, 타협이다. 잘못된것을 인식하고 동의하지 않지만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좋은쪽으로 스스로 타협한다. 인간은 안정을 추구하기에 급격한 변화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최바*의 결정에 질문과 문제의식을 가지지만 스스로 좋은 뜻으로 합리화 혹은 타협한다. 예를 들어 지금이 인터*을 위해선 최선의 선택이다라는 논리이다. 이는 성경에 분명한 기준과 배치되는 일이 발생해도 집단이기주의에 편승해 스스로 타협하고 있는것이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악행을 지지하는 그룹이 된다.
현실적으로는 최바*이 갖는 지배권력에 압도되어 인터*대부분 구성원은 최바*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터* 내에서 잘못된 일에 대하여 비판을 했던 많은 총무그룹, 선교사들은 여러가지 논리와 이류를 만들어 제거해왔다.
또한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야 하지만 인터*의 폐쇄성으로 실제 내용을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또한 인터*으로부터 소요를 일으키는 자이며 사랑이 부족한 자로 지목받기 십상이다. 최바*로부터 배척당하고 공개적으로 그러나 은근히 비난받기도 한다. 싫으면 떠나라고 압력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하고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는 구성원이 많을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다수는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기 보다는 이탈, 무시, 충성, 타협전략을 택하여 부담을 축소하고 이익을 확대하게 된다.
3) 최바*의 권위적 지배구조
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최바*이 갖는 지배권력,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다수 구성원의 묵종을 근간으로 하여 인터*내부에 권위적 지배구조가 안정적으로 구축된다. 그리고 이러한 권위적 지배구조를 통하여 인터*의 병폐가 생기고, 일단 생겨난 비리는 정당한 비판의 결여로 인하여 치유되지 않고 고착되며 이에 따라 인터*은 점점 더 부패하게 된다.
인터*의 사유화와 세습이 그 부당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터*에서 수용되는가의 문제 역시 권위적 지배구조를 통하여 설명된다. 즉, 사유화와 세습이 추진되고 용인되는 것은 이것들이 부당한 것을 알더라도 권위적 지배구조하에서는 문제제기와 비판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 사유화와 세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의 크기는 사유화와 세습의 정당성 여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인터*의 지배권력구조와 폐쇄적 의사결정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터*의 문제들에 대하여 반대목소리가 작은 것은 사유화와 세습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최바*의 지배권력구조의 억압적 영향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적할 것은 이와 같이 인터* 대다수가 인터콥의 가족중심의 사유화와 세습과 같은 명백한 잘못까지 용인하게 된 현상에 대하여 최바*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본적으로 최바*이 올바른 신앙과 신학과 양심에 기초하여 구성원을 올바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락한 죄인이며, 최바*과 그의 가족 역시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절대권력을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첨언할 것은 이와 같은 권위적 지배구조하에서 작용하는 권력은 그 유형을 막론하고 “착취적 권력”이라는 공통점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세습과 같이 부당한 사안에 대하여 행사되는 권력은 구성원의 양심과 신앙을 부당하게 해치고, 불필요한 인터*내 갈등을 초래하여 구성원에게 심적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명백히 착취적이다.
이렇듯 권위적 지배구조하에서 작용하는 권력이 착취적임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갖는 죄성에서 기인한다. 즉, 인간의 죄성은 우월적 권력을 다른 존재의 행복을 위하여 선하게 사용하기 보다는 권력자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유혹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착취권력의 행사의 온상이 되는 인터*의 권위적 지배구조는 제거되어야만 한다.
3. 대안은 무엇인가?
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사유화와 세습을 포함하여 인터*부패의 근원적 요인이 되는 권위적 지배구조는 타파되어야 한다. 그 대신 인터*내 자유로운 토론, 협력, 비판이 가능한 공동체가 실현되어야 한다. 권위적 지배구조를 배척하고 진정한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를 건설하지 않고는 개인가족의 사유화와 세습문제를 포함하여 인터*의 병폐를 고칠 수 없다.
혹자는 이에 대하여 인터*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다스려져야 하고 기름부은 자 최바*을 통해서 다스려 져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 말에는 구약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장이다. 신약에선 만인제사장과 같이 모두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예수님의 제자이며 종이다. 이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대화와 토론 건전한 비판할 수 있으며, 초대교회에선 심지어 그 공동체의 장로와 리더의 문제에 대해서 치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였으며 초대교회공동체의 모습이었다.
모든 권력을 가진 최바*은 좋은 동기에서든 나쁜 동기에서든 지배권력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세습의 경우 “세습이 되어야만 인터*이 안정된다”거나, "영적능력이 유전되고 그 자녀들이 부모의 가업을 이어가는것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능력이 있으면 아들, 딸이라도 무관하다”는 등 설득력없는 논리를 들어 사유화와 세습을 강행하는 현상도 기본적으로는 지배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최바*의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인터*의 권위적 억압구조를 타파함으로써 가장 불편을 받을 자가 최바*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바*이 자발적으로 억압구조를 바꾸는 것은 가장 소망스럽기는 하지만 실제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미 최바*과 그의 가족은 지배권력이 가져다 주는 권력의 달콤함이 크기 때문에 더더욱 지배권력을 포기하려 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바*과 그의 가족은 변화되어야 한다.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하며, 고통받는 인터* 구성원과 하나님의 선교사역을 위하여 변화되어야 한다.
최바*과 그의 가족에 희망을 걸 수 없다면, 그 대안은 인터*구성원에게서 찾아야 한다. 인터*구성원은 인터*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선포하며 인터*의 문제들에 대하여 정당한 개입을 해야 한다. 특히 권위적 지배구조하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최바*의 그릇된 판단에 대하여 정당한 비판의 목소리를 발하여야 한다.
최바*과 그의 가족의 부당한 착취권력에 대응하여 인터*구성원들이 정당한 방어권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바로의 명령을 거부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를 지킨 브아와 십브라처럼 각자가 처해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정의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행동은 인터* 모든 구성원이 본부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이며, 예수님의 제자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인 점을 깨닫기만 하면 가능한 일이다.
또한 본부장과 나머지 구성원의 구분은 계급적 차이가 아니며 수평적 차원에서의 기능적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점을 깨달으면 가능한 일이다. 즉, 본부장이 세뇌시킨 허위의식만 깨진다면 최바*의 지배권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방어권력의 발동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방어권력이란 말에 과민반응 할 필요는 없다. 방어권력은 최바*과 그의 가족을 배척하기 위하여 행사하는 적대적 권력이 아니다. 오히려 최바*과 그의 가족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받들기 위한 정당한 권력으로서 장려되어야 할 대상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최바*과 가족에 의하여 지도받는 인터*구성원이 스스로 깨우쳐 방어권력을 발동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인터*의 가족중심의 사유화와 세습은 불의한 일이며 치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가 이 시점에서 인터* 내외에 부각된 것은 하나님께서 사유화와 세습문제의 해결을 포함하여 인터*갱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기회에 인터*의 전반적 병폐를 개혁하려는 노력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목적과 관련하여 인터*구성원의 사명은 강조하여 지나침이 없다. 많은 구성원들의 생각속엔 최바*과 그의 가족의 자발적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바*과 그의 가족의 변화를 기다리기에 앞서 인터*구성원이 먼저 변해야 한다. 최바*과 그의 가족을 돌이키기 위해서라도 인터*구성원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 이탈했던 이가 돌아오고, 무관심하던 이가 직시하고, 맹종하던 이가 정당한 의견을 표출하며, 안정을 추구하며 스스로 타협했던 비겁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터*의 모든 구성원이 깨어야 한다.
인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열방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시작하신 단체이다.
그리고 인터*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은 이 비전을 바라보며 모인 이들이다.
다시 인터*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