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역자에는 소망이 없다.
인터*의 사유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 현상의 깊은 곳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욕망 뒤에는 자신의 뜻대로 물질을 소유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나르시스적인 자아가 숨어있다.
이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 다른 모든 대상들은 단지 욕망 성취를 위한 수단이 된다. 신앙과 목회의 목표인 하나님도 이 수단의 종목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터*의 세습과정과 사유화 과정이 별 문제없이 잘 이루어지게 해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 욕망에 의미가 있는가? 때로 욕망에는 의미가 있다. 어떤 이는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물질 획득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감을 확인하고 인정받기 위해 물질을 욕망한다. 또는 가족과 자녀를 위해 욕망한다.
이런 욕망에는 자기 제어 장치가 있다. 예를 들어, 최바*자신이 늘 가르치던 원칙, 공동체 안에 구조적으로 비판과 제어가 가능한 제도적 장치등이다. 또는 이렇게 지속할 경우 평생동안 인정받고 누렸던 능력이나 성취감을 일순간에 허물어 버릴 두려움등이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자녀까지도 황폐시킬 수 있는 위험성등이다.
하지만 인터*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제어장치가 작동을 못하게 되었는데 이는 최바*의 오만에서 모든것이 무너졌다. 이 오만과 교만이 결국 예배를 담당하던 루시퍼가 사단이 되는 결정적 문제였다.
인터* 사유화는 물질의 사유화에서 기인된다. 이것을 잘 증명하는 것은 인터*이 작은 규모였을때는 이러한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이 성장하게 되면 엄청난 규모의 동산, 부동산, 재물이 집중되며 이것들의 친인척중심의 사유화를 생각하며 결국 세습을 생각한다. 세습을 막기 위해서는 사유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한 방법 중 하나가 인터*의 공공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서 그러하듯이 이것은 두 차원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의식 차원과 제도 차원이다. 먼저, 인터* 소유에 대한 의식의 급진적 재구성 혹은 재사유가 필요하다.
인터*은 사적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처럼 공유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도 안된다. 역사가 증언하듯이 공유화는 결국 힘 있는 일부 계층에게 권력이 넘어가기 십상이다. 따라서 인터*은 사유화의 대상도 공유화의 대상도 아닌, 곧 누구의 소유 대상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인식의 재구성이 일어나야 한다.
물론 인터*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오래된 주장을 다시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주장은 교회의 사유화를 감추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빈번히 사용되어 왔기에 호응이나 실효성이 미비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 보다는 인터*을 소유의 개념에서 분리시키는 시도가 보다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인터*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인터*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가르침과 인식이 인터*구성원들에게 퍼져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적인 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적, 법적 장치가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인터*의 사유화, 세습 등을 법적,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세워야 한다. 적어도 인터*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사태들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공론화 작업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지속적으로 설득하면서 제도적 혁신 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물론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현 상황을 그대로 놔둘 시 더 어려운 상황 혹은 돌이키기에 너무 늦은 시기가 도래할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뜻과 마음을 모아 문제에 대처하여야 한다.
그 현상의 깊은 곳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욕망 뒤에는 자신의 뜻대로 물질을 소유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나르시스적인 자아가 숨어있다.
이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 다른 모든 대상들은 단지 욕망 성취를 위한 수단이 된다. 신앙과 목회의 목표인 하나님도 이 수단의 종목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터*의 세습과정과 사유화 과정이 별 문제없이 잘 이루어지게 해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 욕망에 의미가 있는가? 때로 욕망에는 의미가 있다. 어떤 이는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물질 획득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감을 확인하고 인정받기 위해 물질을 욕망한다. 또는 가족과 자녀를 위해 욕망한다.
이런 욕망에는 자기 제어 장치가 있다. 예를 들어, 최바*자신이 늘 가르치던 원칙, 공동체 안에 구조적으로 비판과 제어가 가능한 제도적 장치등이다. 또는 이렇게 지속할 경우 평생동안 인정받고 누렸던 능력이나 성취감을 일순간에 허물어 버릴 두려움등이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자녀까지도 황폐시킬 수 있는 위험성등이다.
하지만 인터*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제어장치가 작동을 못하게 되었는데 이는 최바*의 오만에서 모든것이 무너졌다. 이 오만과 교만이 결국 예배를 담당하던 루시퍼가 사단이 되는 결정적 문제였다.
인터* 사유화는 물질의 사유화에서 기인된다. 이것을 잘 증명하는 것은 인터*이 작은 규모였을때는 이러한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이 성장하게 되면 엄청난 규모의 동산, 부동산, 재물이 집중되며 이것들의 친인척중심의 사유화를 생각하며 결국 세습을 생각한다. 세습을 막기 위해서는 사유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한 방법 중 하나가 인터*의 공공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서 그러하듯이 이것은 두 차원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의식 차원과 제도 차원이다. 먼저, 인터* 소유에 대한 의식의 급진적 재구성 혹은 재사유가 필요하다.
인터*은 사적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처럼 공유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도 안된다. 역사가 증언하듯이 공유화는 결국 힘 있는 일부 계층에게 권력이 넘어가기 십상이다. 따라서 인터*은 사유화의 대상도 공유화의 대상도 아닌, 곧 누구의 소유 대상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인식의 재구성이 일어나야 한다.
물론 인터*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오래된 주장을 다시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주장은 교회의 사유화를 감추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빈번히 사용되어 왔기에 호응이나 실효성이 미비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 보다는 인터*을 소유의 개념에서 분리시키는 시도가 보다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인터*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인터*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가르침과 인식이 인터*구성원들에게 퍼져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적인 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적, 법적 장치가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인터*의 사유화, 세습 등을 법적,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세워야 한다. 적어도 인터*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사태들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공론화 작업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지속적으로 설득하면서 제도적 혁신 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물론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현 상황을 그대로 놔둘 시 더 어려운 상황 혹은 돌이키기에 너무 늦은 시기가 도래할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뜻과 마음을 모아 문제에 대처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