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단체중 세습을 진행한 경우는 CCC외엔 없습니다.
선교단체중 세습을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CCC가 유일합니다. CCC가 어떻게 가족중심으로 사유화되고 세습을 성공했는지 그 과정을 잘 읽어보십시오. 그리면 인터*의 미래를 예측할수 있을것입니다.
아래는 CCC가 어떻게 세습을 진행했는지 알수 있는 글입니다.
인터*에 있으신분들은 꼭 꼼꼼히 읽어보세요. 여러분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CCC 세습의 잉태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는 교회나 기독교 기관에 대해 ‘세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그 단어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용도로 인해 거부감이 있는 줄 알고 있다. 세습을 단어대로 정의하면 “그 가문에 속하는 신분 재산 직업 등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는 일”이고 부정적 통념으로는 “돈, 명예, 권력 등을 혈연관계인 자에게 대물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의들 속에서 교회와 기독교기관의 혈연에 의한 대물림을 세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우리 또한 돈, 권력, 명예를 대물림하는 것에 있어서 세상 기업이나 정치적 집단의 행태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발제자는 작금의 CCC 대표직 세습이 돈, 권력, 명예와 어떻게 관계되어 있고, 그 절차적 정당성이 부당한지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참고로 이에 대한 신학적, 성경적 부당함은 신학자나 목회자인 다른 발제자들의 발표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CCC의 첫 갈등과 DFC의 탄생
김준곤 목사의 표현에 의하면 ‘CCC의 1991년은 역사상 도적맞은 페이지’라고 한다. 90년 겨울 33명의 명의로 발송된 편지로부터 시작된 CCC 재단법인 운영상의 재정비리, 친인척 족벌운영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후 78명으로 늘었다. 사태가 급박해 지면서 김준곤 목사는 일부 문제 제기에 대해 시인하며 사과함으로 합의를 통한 사태 수습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몇 개항에 동의 서명까지 한 김준곤 목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다가 급기야 7월 단기선교 사역 중 개혁 측의 중추적인 중진간사를 전격 면직시킴으로 사태는 악화된다. 이후 개혁 측에서는 개혁위원회가 구성되고 김준곤 목사 측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대립하다가 가까스로 김준곤 목사가 개혁 측의 요구안 6개항 중 5개항을 전격 수용, 양측이 참여한 과도 기구를 설립하여 92년 12월 18일 대화합에 이르게 되었다. 이날 화합에 대해서는 교계 및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광고되었다.
그러나 이후 또 다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에 배신감을 느낀 50여명의 간사들은 마침내 CCC를 탈퇴, ‘제자들 선교회’(이하 DFC)를 설립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이르렀다. 이후에도 원주회관 소유권 문제, 성명서에 대한 명예훼손 문제 등으로 상호간 민형사상 고소 고발이 잇따랐고, DFC 측의 청와대 등 국가기관에 진정서 제출과 CCC 측의 DFC의 교계 연합 모임 가입 방해 등, 상호 비방이 잇따랐다. 그러던 중 1995년 4월 14일 원주회관 고소 건의 대법원 판결을 앞둔 시점에 양측간에 전격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주요 합의 내용 : 대법원 계류 중인 원주 CCC 회관을 DFC에 기증함, 향후 언론기관, 국가기관에 고소, 고발, 진정, 투서하지 않음, DFC 측이 김준곤, 김경란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위증 사건을 취소함, 양 단체가 전국 각 대학 동아리 등록을 방해하지 않고 협조 함, 원주 회관 관련 대법원 계류 중인 민사는 CCC 측에서 상고를 취하하고 소송비용 청구하지 않음, 향후 모든 분쟁을 종식하고 서로 발전을 협조기로 함.) 그러나 이 또한 지켜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발제자가 91년 사태 즉 DFC 분리와 관련한 사항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발제자의 견해로는 이번 CCC 대표직 세습은 91년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사태의 초반에 나온 여러 문건들 중 1991년 5월 22일, 김준곤 목사가 “CCC 사태에 대해 카타르시스라도 해 보고 싶은 심정으로 정리하”(동 문서 1p)여 인사정책위원들에게 보낸 ‘CCC 91년 사태의 전말서’란는 글을 보면 개혁을 요구하는 간사들의 3차에 걸친 편지의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해명하는 가운데 후계자와 관련,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진술한다.
“그런데 이번 간사들 모임에서 그 순진하게 준비하고 있는 내 딸 윤희와 P군(박성민 목사를 지칭-발제자)을 마치 재벌 기업의 후계자처럼 선전하면서, 사위를 후계자 삼기 위해 40대 이상은 다 내쫓을 계획으로 정인수 간사를 40대 기수론의 속죄양으로 삼았다는 추리소설 내용 같은 것을 선전하였습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요?, 인권은 없는 것입니까?, 상식은 없는 것입니까?, CCC 간사 이전에 인륜은 없는 것입니까?, 딸도 사위도 이 일은 모르고 있습니다. 순진하기 만한 내 딸은 세상 영광 다 버리고 아버지가 하는 학생운동을 하고자 공부하고 있고 아직도 CCC 간사입니다.”(동 문서 13p-14p)
그런데 당시 3차에 걸쳐 발송된 해명 요구 문서에는 어디에도 사위인 박성민 목사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단지 재단 이사회와 사무국의 족벌체제에 대한 우려만이 있다. 이로 보건대 공식 문건에는 없지만 당시 개혁을 요구하는 간사들 사이에서 40대에 전격적으로 부대표로 발령되고 차기 대표로 내정된 정인수 간사를 사위에게 세습하기 위한 전 단계로 보는 견해가 팽배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금번 CCC 대표직 세습이 CCC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듯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단순히 김준곤 목사가 노회하여 후계자를 염려하는 선임 간사들(주서택 목사: 청주 CCC 대표, 이종석 목사: 전남 CCC 대표)에 의해 2002년 4월 17일 전국간사수련회 때 추천되어 정인수 동아시아 대표에게 건의되어 선정되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91년 당시 정인수 간사는 비상대책위 위원장이었고, 주서택, 이종석 목사도 선임 간사들이었기 때문에 김준곤 목사의 이런 발언을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1922년 3월 11일 개혁에 한계를 느끼고 ‘CCC를 떠나기로 결단하는 간사 일동 명의’로 발송 된 “한국 CCC의 현주소와 지향점”이라는 문서 중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한국 CCC는 이미 김목사님의 개인 조직이며, 재단은 개인 사유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조직과 재산은 가족끼리 세습하려고 할 것입니다”(동 문서 5p)
이로 보아 세습에 대한 우려는 개혁을 요구하는 간사들의 일관된 우려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불행하게도 10여 년 전의 우려는 2002년의 현실이 되었다. 발제자는 2000년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가 아들인 김정석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것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였다. 당시에 선교단체 중에서도 CCC와 UBF가 세습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었다. 2001년 5월경 새벽이슬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것이 있어 박성민 목사(당시 총무)에게 전화한 적이 있다. 박 목사와는 이미 99년에 극동방송 모 프로그램에 함께 출현했기 때문에 구면이었다. 그때 대화 중 “저도 CCC 출신인데 CCC가 세습을 한다는 소문대로 되지 않기를 바라고, 혹시 그렇게 된다면 끝까지 반대할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하였다. 당시 박 목사는 이렇다하게 정확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로보건데 이미 세습은 10 여 년 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의심받아 오면서 합법적 절차를 밟았다고 할 수 있다.
CCC가 세습이 아니라 주장하는 근거들
CCC가 세습이 아닌 이유로 드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절차적 정당성과 검증된 리더십이다. 먼저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서 살펴보면, CCC 공식 발표에 의할 때 2002년 4월 17일 전국 간사수련회에서 주서택 목사와 이종석 목사의 제안을 모든 캐비닛(도대표 및 국장급 모임, 16인으로 구성되어 있음)들이 4월 25일 김준곤 목사에게 건의해 받아들이고, 김목사가 동아시아 대표인 정인수 대표에게 건의해 합리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밟을 것을 통보한 이후, 정대표가 직접 한국에 와서 캐비닛들 각자의 개별적 입장을 통해 박성민 목사를 단독 추대하여, 국제 CCC의 절차를 따라 9월 1일 임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준곤 목사의 영향력 혹은 의도 속에 진행되었다는 의심에 대해 CCC는 공식 발표 문건을 통해 일관적으로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홍보 책임자인 김철영 목사는 2003년 1월 8일 CBS 저널에서 발제자와의 토론 중 김준곤 목사의 “직간접적 영향은 없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CCC 대표는 국제 CCC의 절차에 의해 임명됨으로 김준곤 목사의 소임이 아니며 국제 선교단체의 특수성에 기인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작 상급자인 정인수 대표는 2002년 12월 18일 김철영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CCC나 김준곤 목사의 영향력이 배후가 된 것은 당연하다. 박성민 총무가 사위이기 때문에 CCC 내에서 리더십을 검증 받고 중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말한다면, 이런 주어진 기회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고, 추천자인 이종석, 주서택 목사는 뉴스앤조이 김종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03. 1. 28.) “김준곤 목사의 직간접적인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교회든 단체든 후임자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전임자의 의중이 무엇일까 관심을 갖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사항은 주서택 목사에게 발제자도 확인한 바이다.
이렇듯 이미 절차적 과정 속에서 김준곤 목사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고, 또 김준곤 목사가 총재직과 재단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과정 중에 김준곤 목사의 제자이며 최측근으로 활동하는 정인수 대표, 이종석 목사, 주서택 목사가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의미의 절차적 정당성이 상실된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정말 CCC가 객관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전체 간사들의 자유투표나,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직접적인 측근이 아닌 인사들, 예컨대 재단 이사회나 나사렛 형제들 중앙회, 특별히 구성된 위원회, 학생대표들 등을 통해 추천되고 검증되었어야 한다.
또 정당성의 명분으로 제시되는 합리적 리더십에는 98년 기획실장으로 부임하여 6개월 간 수행하고 99년 이후 총무 및 서울지구 대표가 되어 4년 간 검증되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GCTC(주: 10개월 간 받는 간사임용훈련)도 수료하지 않은 박목사가 어떻게 89년 6월에 CCC 간사가 되었으며(CCC 정책상 부부 중 1명이 간사가 되면 다른 쪽도 간사가 된다고 하나 이는 혐동간사이지 정식간사가 아니다), 간사로서 첫 사역이 기획실장이며, 기획실장을 6개월밖에 하지 않은 사람이 총무와 서울지구대표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것이 합리적인 리더십의 태도인가? 총무를 4년 간 무난히 한 것이 리더십을 검증한 것이라 하지만 CCC가 이 부분을 증명하려면 재임 기간 4년 동안의 사역의 열매에 대한 구체적 자료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단지 무리가 없었다는 이유가 합리적 리더십이 검증된 것은 아닌 것이다. 세상적으로 재벌 세습의 경우 3년 6개월 간만 이사를 하면 대표가 될 수 있는 권한을 주기 때문에 삼성의 이재용씨의 경우 상무보를 3년 6개월하고 최근 세습을 시도하고 있고,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 등 모든 재벌 세습도 동일하다. CCC조차도 부정적으로 발언한(정인수 대표, 김철영 목사 등) 교회 세습의 경우도 모두가 유학 다녀온 아들을 부교역자로 임명해 2-3년이 지난 후 검증되었다고 하며 진행하고 있고, 이는 심지어 북한의 김정일 정권도 동일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도대체 CCC가 제시하는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적 리더십이 이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또한 김준곤 목사와 40대인 박성민 목사 사이에 그동안 충성되게 지도력을 발휘하며 사역해 온 50, 60대 간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국제적 감각과 합리적 리더십이 부족한가? 그렇다면 사람을 키우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CCC 사역은 실패했다고 보아야 한다. 발제자가 알기로 많은 시니어 간사들이 한직으로 밀려나 있다가 보직해임 당하거나 해외선교사라는 명목으로 나가 CCC와 관계없이 생계를 꾸려가거나 교회 사역을 하고 있다. 수 십 년간 김준곤 목사의 말에 순종하여 충성되게 무명의 전도자, 평신도 자활 사역자로 오로지 대학생사역에 충실한 간사들은 대표 자격이 없고, 졸업 후 해외에 나가 공학박사,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신학교 교수를 하고 들어온 박성민 목사는 자격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CCC는 현장 중심적인 모든 간사 트레이닝 과정을 변경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CCC의 세습이 대물림인 이유들
서론에서 발제자는 세습이 돈, 권력, 명예의 대물림이라고 하였다. 이제 CCC의 세습이 어떻게 돈, 권력, 명예의 대물림에 해당하는지 전술하고자 한다. 단, 이는 사회 통념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의 이야기임을 밝힌다. CCC는 재단법인이다. CCC 간사들의 경우 캐비닛들조차도 재단법인과 CCC를 구분하고 있고 실제로 20, 30년 간 사역한 간사들이 재단에 대해서는 이사가 누구인지, 재정이 어떻게 되는지, 수익은 있는지, 집행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마치 주식회사 새벽이슬이 주식회사와 새벽이슬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이다. 국내 유일, 아니 전 세계 선교단체 중 유일의 재단법인인 CCC의 모든 간사는 재단법인의 직원인 것이다. (주:대개의 선교단체는 사람으로 구성된 사단법인이다. 재단법인은 재정으로 구성된 법인을 의미 함)
따라서 CCC를 이해함에 있어서 재단법인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CCC는 재단법인 문제가 세습과 관련이 없다고 하나 CCC가 재단법인인 상황에서 법인의 재정 상황이 바로 돈의 문제인데 어떻게 상관이 없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CCC가 재단법인 인가를 받은 것은 70년 5월 22일이다. 재단의 사업목적은 8가지(전도사업, 육영 장학사업, 구호 자산 사회 사업, 학생아카데미센타 건립과 운영, 청소년 보호 육성을 위한 수련 시설의 설치와 운영, 농어촌 영세민을 위한 교화산업 등). 이중 회관 임대사업은 98년 5월 19일 삭제되었다. 이는 정동빌딩을 애초 학생 아카데미센타로 설립하였다가 용도와 달리 빌딩 임대 사업장으로 전환, 많은 의혹을 만들다가 95년 매각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사료된다.
재단 재산은 현금 214억, 부동산 부암동 센타와 전국 회관 50곳, 천마산 8만평 땅, 신안군 소재 간척지(그 외 토지가 더 있음), 순 출판사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사는 김준곤, 전효심, 정정섭, 하상옥, 주수일, 주서택, 조성민, 서용배, 박동한, 박성민으로 이중 가족은 사모인 전효심(91. 5. 23. 사임했다가 96. 1. 26. 재취임)과 사위인 박성민이 있다.
박성민 목사는 98년 10월 기획실장 시절 이사로 취임하였다. 이사였던 정인수 간사와 현 이사인 주서택 목사가 20년 이상을 간사 생활하며 총무를 역임한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인사이다. 또 91사태 당시 사무국장으로 문제 당사자였던 전효심 사모의 조카 전동진씨는 96년 1월 26일 사임하였다.(무슨 이유인지 정동빌딩 매각 후 신문에 낸 매각 해명 광고에는 전씨가 95. 5. 에 사임한 것으로 되어있다) 현직 이사 중 30%인 3명이 친인척인 것이다. 또 지난 2001년 1년 간 후원 모금된 재정은 100억을 넘는다. 이렇게 볼 때 CCC는 수많은 동산 및 부동산과 200억 이상의 현금, 매년 후원 모금되는 100억 이상의 재정을 집행 운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CCC 대표는 이를 총괄 내지는 관여하는 자리이다.
CCC에서는 모든 CCC 간사가 모금을 해서 생활하고 있고 대표는 개인 모금 뿐 아니라 전체 모금도 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라고 하지만, 박성민 목사의 경우 재단법인 내규인 ‘간사 자녀가 간사인 경우 생활비를 지급 한다’는 규정에 해당하고, 부인인 김윤희 박사가 간사이지만 횃불트리니티 교수이기에 다른 간사들과 동일한 처지로 이해할 수는 없다. 더구나 1992년 일반회계 지출결의서에 의하면 활동비 명목으로 총무나 비서실장 등 6명에게 월 20만원에서 70만원까지 지급하고 출장, 교통비를 별도 지급한 것을 볼 때 직책수당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김준곤 목사의 경우 91년 매달 300만원에서 최고 500만원까지 급여를 수령한 것으로 문건은 기록하고 있다.
박성민 목사와 CCC가 재정 문제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재단법인에 대한 투명한 운영과 공개, 합리적 운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재단법인의 수익은 이익의 60%를 CCC 목적사업에만 사용한다는 용도에 부합하게 사용되어야 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캠퍼스에서 묵묵히 헌신해오고 하고 있는 간사들의 복지(연장교육, 자녀교육, 주택문제, 노후대책 등)에 사용되어야 한다. 재단 재정과 관련해 그 동안 김준곤 목사에 의해 독단적으로 사용한다는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고, 단기 선교나 각종 수련회 이익금 사용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것들에 대해 박성민 목사가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투명하게 집행하지 않는다면 재정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세습 한 것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일례로 비서실에 있다가 사무국 간사로 간 김목사님의 인척인 여자 간사가 몇 년 전 2억원 가량을 횡령한 것에 대한 처리 문제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고, 최근 한 시니어 간사와의 행정소송 과정에서 1억원이 지급된 것에 대해서도 해명하는 사람마다 근거와 내용이 다르다.
또 95년 GCOWE 대회 이후 10억 가량의 이익금이 발생하였고 이 재정에서 주서택 목사가 최근 2억원을 대출하여 교회 개척 자금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발제자가 확인한 결과 이 재정의 존재와 관리에 대해 알거나 해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실정이다. 이도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촉구한다.
현재 CCC 간사는 약 800여명에 달한다. 대표는 이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한다. CCC는 박성민 목사가 대표가 된 이후 공동리더십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박성민 목사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공동리더십에 포함되는 10여 명이다. 이들에 대한 인사를 보면 대부분 지구나 도대표 등을 겸직하고 있어서 공동리더십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진정으로 공동리더십을 하려면 리더십 수를 줄이고 최종 결재권에 준하는 권한을 주어야 가능하다. 또 ‘국가대표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해 그렉펠로우(Greg Fallow, EAO인사담당관)가 91년 사태 당시 보낸 내용에 의하면
“명령체계란 국제 CCC 안에서 모든 결정과 철학이 성립되는 조직적 구조를 말합니다....<중략> 각국의 간사는 그들 부서 책임자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부서 책임자는 국가대표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고, 국가대표는 대륙 책임자 등의 상위 명령체계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중략> 국가대표는 국제 CCC의 정책을 자기 국가 내에서 수행 할 책임과 전권(Exclusive right)을 보유합니다. 이 권한과 책임은 인사에 관한 문제 즉 임명, 전출입(이동), 업무분장, 징계조치 등을 포함합니다. 명령체계와 의사결정제도는 비타협정책입니다.”
라고 밝히고 있어 대표 1인이 모든 권한을 비타협적으로 소유함을 알 수 있다. 권력의 정의를 “타인을 지배하여 복종시키는 것”이라면 CCC 대표 자리는 800여명 간사에 대한 절대 권력을 가진 자리인 것이다.
박성민 목사는 인터뷰를 통해 임기제를 도입하겠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자신은 한 텀만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CCC 내에 임기제에 대한 제도적 보완 장치가 없고 지금처럼 국제 CCC 절차를 이야기하고, 전술한 것과 같이 대표가 막강한 권한을 소유하며, 간사들이 김준곤 목사의 영향을 의식한다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또 다시 연임되고 장기화 될 가능성도 높다. 진정으로 임기제를 하기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CCC가 한국교회와 사회 속에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히 높다. 이미 김준곤 목사는 한국교회 원로목사들 중에 가장 어른의 반열에 대우받고 있으며, 한국교회 부흥의 제 1 공로로 CCC를 공식 인정하고 있다. CCC는 김준곤 목사의 대 사회적 활동에 기인하여 교회 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도 존중을 받고 있다. 누구라도 CCC 대표자리를 명예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준곤 목사가 CCC를 개척하여 오늘에 이르며 명예로운 위치를 일구었다면 차기 대표는 이미 일구어진 자리에서 이를 누리며 더욱 발전 승화시키는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박성민 목사가 대표가 됨으로 40대 중반의 나이에 교계 및 사회 지도자로 존중받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CCC의 자리가 버겁고 고난이 많은 자리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계, 경제계, 기타 사회 제반 모든 일에서 버겁고 고난이 많지 않은 곳은 없다. 더구나 리더의 자리라면 그곳이 어디이든 엄청남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자리를 명예롭게 생각하며 때로는 권력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필자는 2002. 12. 전격 발표된 CCC 대표직 세습에 대해 10여년 전 소위 91년 사태라고 하는 DFC와의 분리에서부터 어떻게 관계되어 왔는지에 대해 논하였고, 박성민 목사를 CCC 대표로 임명하게 된 과정 가운데 김준곤 목사가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었는지를 밝혔으며, 이 과정에서 주장하는 절차적 정당성의 허구를 주장하였다. 또한 합리적 리더십의 검증되지 않은 면과 그 일환에서 박성민 목사가 장담하는 공동리더십제와 임기제의 허구성을 지적하였다. 또한 세습의 일반적 정의에 따라 돈, 권력, 명예가 어떻게 대물림 되었는가를 논하였는데 재단법인의 수 백 억의 재정과 동산, 부동산, 약 800여명의 간사에 대한 절대적 권한, 한국 교회와 사회 속에서의 CCC의 위상 등을 들어 이를 사위에게 대물림하는 것은 세습에 대해 부정적인식과 사회적 역기능에 대한 통념이나 교회의 머리가 예수그리스도이며 언약공동체를 중시하는 성서적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발제자는 지난 2003년 2. 중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현재 그 대학 CCC 총무 순장의 고백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 순장은 자신과 자신의 선배들은 CCC 세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공동체를 떠날 수는 없다면서 후배 순원들이 들어와서 이 사안을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발제자는 그 순장의 말에 할말을 읽었고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 공동체원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과 갈등을 주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세습을 감행한(세습 뿐 아니라 부정부패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에서 예외 없이 봐 온 것이었다.
신앙의 양심에 따라 이야기하면 권위에 순종하지 않았다 하여 쫓아내고 표현하지 않고 있자니 양심에 가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가 중간리더 일 때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는 자신의 신앙의 양심과 다르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CCC 내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전개하던 간사가 동료로부터 이단, 제명 운운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모 간사는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운영하는 CCC 세습반대 서명란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보직해임을 당하였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지난 10여 년 전 DFC가 제기한 재단운영 투명화, 친인척 배제 등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10년 후 쓴 열매가 되어 다시 돌아오고, 지금 현 시점에서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다시 10년 후 모 대학의 순장과 같은 지체들이 고통을 받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발제자는 적어도 역사적 기록이라도 정확히 남겨두어야 겠다는 생각에 본 발제를 하였으며 지난 10여 년 전의 91년 사태에 대해서도 가급적 자료를 모아 역사적 기록을 남겨 보는 이들이 객관적으로 신앙의 양심을 따라 판단하도록 하고자 한다.(이 모든 기록은 공개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