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의 존재 이유는 열방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것이다.
인터*이 열방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라는 공공적 책임성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전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터*이 열방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인터*이 상식적인 기준과 합리성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타락한 단체가 된다면 빛과 소금은 커녕 인터*안에 빛과 소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것이다.
인터*은 세상의 부조리에 더 이상 편승하지 않고 오히려 부조리한 질서를 변화시켜야 한다. 인터*의 존재 이유는 천국복음을 선포하며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를 만드는것에 있다.
열방에 하나님나라의 공의와 사랑을 선포하며 제시해야 할 인터*이 한국사회로부터 사망선고를 진단받지 않도록 인터*의 갱신이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인터*은 선교 성장이 중요한 가치가 되면서 그것을 가로 막는 모든 것이 다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된 되었다. 지금도 인터*이 크고 성장하고 있으니 성경적이지 않은 모든 제도와 시스템에 대해서 암묵적 묵인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인터*안에 대화와 소통과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 것들이 성장에 도움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극한 집단이기주의 가운데 인터*의 양적 증가에 집중하며, 건물 올리는 것이 가장 선한 것으로 치부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터*의 성장에 기본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세미나에 사람들을 동원하는것에 모든 힘이 집중된다. 이것이 인터*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프로그램의 중심엔 최바*이 있었고, 최바*스스로 인터* 성장의 모든 이유는 스스로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이 능력이 자녀에게 유전된다는 독특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내부 맴버들은 지금까지 인터* 성장이라는 대의앞에 그 내용이 성경적인지 예수님의 방법인지에 대한 질문과 고민보다는 결과가 좋으면 방법은 옳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끝은 인터*은 최바*의 것이고, 최바*의 가족만을 위한 것이라는 결과에 도달한다.
결국 최바* 일가족의 이익만을 챙겨 갖는 이기주의가 만들어진다. 물론 가족중심의 사유화와 세습이 진행되어도 인터*의 왕국에 사람들이 필요하기에 그 안에 있는 이들은 어느정도 동일한 혜택과 유익은 제공할것이다. 하지만 이 카르텔에 끼지 못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집단이기주의적 단체가 될것이다. 아니 인터*의 사유화와 세습이 진행될수록 한국교회가 인터*을 소외시킬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사실 한국교회 대부분 운영에 보이는 현상이다. 이러한 비 합리적인 경영방식이 가능한 것은 결국 우리 나라 특유의 유교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과거 ‘가문’으로 이해되던 것들이 오늘날에도 비슷한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초기 이러한 유교적 가치관을 깨뜨리며 새로운 가치체계를 가져왔다. 물론 그 배후에는 서구에서 온 선교사들이 있다. 그들은 기독교의 보편성과 합리성, 그리고 공익성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체계의 조직인 교회를 이 땅에 선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이 땅에 기독교기관이나 기독교학교에서 그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에서는 누구의 교회라든지, 또는 어느 집안의 학교나 기관이 없었다. 선교사들은 교회를 설립하고, 기관과 학교를 설립하면서 개인의 소유로 보지 않았고, 그것을 한국교회의 자산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철수한 후에도 그것은 한국교회의 큰 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 역사 130여년에 한국교회 기관들이 문제가 생긴다. 기독교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한국사회 특유의 특성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유산으로 유지되고 남았던 기관들이 특정한 집단, 또는 특정한 인물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고 사유화돼 가는 것이다.
기독교정신으로 인해서 새로워진 것들이 다시 한국적 가치관에 의해서, 그리고 그 세력에 의해서 지배받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 본다.
인터*에 기독정신의 회복이 필요하다. 보편적 가치와 합리성, 그리고 공익성이다. 이것은 내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적인 합리성에 기반한 판단이 가능해야한다. 이러한 가치관과 태도에 기초하여서 토론의 문화가 이루어져야한다. 공적기관이라면 공적인 자리에서 토론하고 이해를 나누어야 한다. 그 자리에 필요한 것은 기독정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교회의 기능을 공고히 해야 한다. 현재 인터*에는 최바*에 대해서 수없이 터져 나오는 문제들이 있는데 이런 것에 대해서 치리가 없고, 권고하거나 지도할 수 있는 권위가 없다. 문제가 있으면 고칠 수 있어야 하는데 공교회가 무너지고 나니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할 방법자체가 없다.
인터*에 공익재단이 필요하다. 사적 기반에서가 아니라 공동의 재산으로 남아야할 것들에 대해서 관리하고 인정할 수 있는 재단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다만 그 것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